장애물을 맞닥뜨리면 부숴버리는 쿠라모토-토지가 만든 사케. 니후다자케(荷札酒).
니이가타현은 명실상부 ‘니혼슈’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지역이며 카라구치중에서도 마시기 쉽고 페어링하기 너무나도 적절한 부드러운 카라구치, ’ 탄레이 카라구치(淡麗辛口)’로 유명한 지역이다.
니혼슈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 내가 마신 니이가타현의 니혼슈는 ‘쿠보다 센쥬’.
탄레이 카라구치라는 말만 들었을 땐 어떤 맛인지 몰랐었던 나에게 탄레이 카라구치를 어느 방법보다 직관적이고 정확하게 알려 줬던 니혼슈이자 니이가타현의 니혼슈란 무엇인지 알려줬던 니혼슈이다.
그러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일하는 곳에서 직장 동료한테 니후다자케를 추천받았다.
니이가타현 사케중에서 상당히 인기를 얻고 있는, 요즘 뜨고 있는 사케 중 하나라는 얘기와 함께.
니혼슈 유행에 뒤쳐져있던 나는 니이가타현 니혼슈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쿠보타 센쥬의 맛을 떠올렸지만, 이내 그 생각은 물론 니이가타현 니혼슈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싹 다 갈아엎어야 했다.
니후다자케는 탄레이 카라구치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이 니혼슈를 만든 쿠라모토이자 토지는 본인의 청춘을 현재 2026년에도 본인의 니혼슈에 갈아 넣고 있는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젊은 토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 알아 볼 니혼슈는 니이가타현에서 만들고 있는 ‘니후다자케(荷札酒)’와 그 양조장 ‘카모니시키 주조(加茂錦酒造)’이다.
역사
1. 양조장 설립 ~ 니후다자케 탄생 전
1893년 니이가타현 카모시(加茂市)에서 카모니시키주조(加茂錦酒造)가 세워집니다.
1893년 니이가타현 카모시(加茂市)에서 카모니시키주조(加茂錦酒造)가 세워집니다.
사실 카모니시키 주조는 현재 쿠라모토를 역임하고 있는 타나카 가(家)의 가업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고 친척의 가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120년이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2007년에 경영이 어려워져 당시 쿠라모토는 친척인 ‘타나카 야스히사(田中康久)’씨에게 양조장을 넘기게 됩니다.
양조장을 인수받은 사람은 바로 니후다자케를 탄생시킨,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타나카 유우이치(田中悠一)’씨의 아버지 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유우이치씨도, 아버지인 야스히사씨도 원래 니혼슈를 즐겨 마시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커피를 못마시는 사람이 카페를 연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 카페의 수명이 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듯이, 니혼슈를 싫어하는 사람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니혼슈를 만들지 못하며 오랫동안 니혼슈를 만드는 양조장 또한 만들 수 없습니다.
야스히사씨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걸까요?
양조 업계에 뛰어든 이후로 좋은 니혼슈를 느낄 수 있는 혀를 갖기 위해, 맛있는 니혼슈를 만들 수 있는 혀를 갖기 위해 매일 밤 여러 종류의 니혼슈를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아들이자 오늘의 주인공인 유유이치씨도 이 때 강제로 매일 밤 일어나는 시음회에 참여하게 됩니다.
2018년 인터뷰에도, 2026년 인터뷰에도 당시 있었던 시음회에 대해서 유우이치씨는 상당히 괴로운 시음회였다고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 때부터 시작된 여러 사케에 대한 경험이 훗날 니후다자케의 성공적인 데뷔의 큰 거름이 됩니다.)
당시 양조장엔 토지가 없었기에 야스히사씨는 직접 경험을 통해 양조 기술을 갈고 닦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몇몇 부분은 새로운 기술이나 장비를 도입해 노동력이나 시간 등의 비용을 효율적으로 절감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 유우이치씨에게 새로운 코지판(麹床)을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두 부자는 대학에서 이공계를 전공으로 했기에 수백만엔이 넘는 시판제품 대신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자재를 사서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유우이치씨가 양조장 일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됩니다.
(누룩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온습도 조절도 스마트폰으로 가능할 수 있게 연결했으며 쌀을 씻은 뒤 반드시 필요한 배수 작업도 IC칩을 통해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두 부자는 직접 몸으로 부딪혀 벽에 부딪히면 벽을 돌파 할 방법을 강구한 뒤 헤쳐나갑니다.
힘들게 넘은 벽 너머에 또 다른 벽이 존재해도 전과 같이, 더 큰 벽을 넘을 방법을 강구합니다.
매일 밤 계속되는 니혼슈 시음회와 함께요.
2. 니후다자케의 탄생 - 주욘다이와 닷사이에게 얻은 충격
유우이치씨는 위와 같은 사건들, 그리고 매일 밤 니혼슈 시음회를 겪으며 점점 니혼슈에 빠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던 와중 그는 닷사이와 주욘다이를 만나게 되는데, 이 두 니혼슈를 시작으로 유우이치씨는 완전히 니혼슈의 세계로 자신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닷사이는 마신 뒤 그 맛과 완성도에 감탄하며 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니혼슈가 되었는지 납득하는 계기가 되었고 주욘다이는 감칠맛과 향, 맛 등 모든 방면에서 쇼크를 받고 이 때부터 주욘다이를 만드는 타카기 주조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롤모델로 삼습니다.
당시 니이가타대학을 다니며 정보공학을 전공하고 있었지만 양조에 대한 열정이 좋은 대학보다 뜨거웠던 것일까요. 결국 유우이치씨는 부모님께 대학을 그만두고 양조 일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소년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부모님의 반대. 이제까지 잘 걸어왔던 안정적인 길에서 벗어나 어려운 길을 택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님의 입장에서 자식의 선택에 대한 반대는 클리셰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를 넘어서는 것도 소년만화의 클리셰인데요.
아버지 야스히사씨는 유우이치씨에게 1년 내로 하세가와 사케텐에 본인의 니혼슈를 진열시키라는 숙제를 줍니다.
하세가와 사케텐은 일본 전국의 사케텐중에서도 톱 클래스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도쿄의 오모테산도를 비롯한 각종 도쿄 중심 지역에 입점해있는 사케텐. 처음 만든 니혼슈를 그런 곳에 출품시키는 것은 누가 봐도 절대 쉬운 과제는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1년 내로 말이지요.
1년이란 기간은 짧았지만 유우이치씨는 벽을 맞닥뜨린다면 그 벽을 넘어 설 방법을 갈구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토지가 없었기에 양조를 배울 스승이 없던 상황에서 그는 각종 잡지, 책, 인터뷰를 보고 양조에 도움이 될 자료들을 읽고 직접 적용해봅니다.
영상에 나온 각종 그래프들이나 수치들을 확인해 직접 적용해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물론이고 타카기주조가 나온 다큐멘터리를 프레임단위로 재생하며 양조 방법에 대한 힌트도, 영감도 얻습니다.
그렇게 만든 첫번째 니후다자케를 몇 병 가지고 무작정 도쿄의 하세가와 사케텐으로 향하기 시작합니다.
무작정 찾아깄기에 기회조차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다행히 점원과 이야기 할 기회를 얻고 필사적으로 사케를 어필, 며칠 뒤 가게로부터 온 연락은 니후다자케를 들여도 좋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코야마사케텐(小山酒店), 아지노마치다야(味のマチダヤ), 슈호마사루야(酒舗まさるや)등 도쿄에서 굵직한 사케텐과도 거래를 성사시켰으며 그 외의 여러 사케판매점에서도 거래를 하게 되며 성공적인 데뷔를 마무리합니다.
사케텐들을 매혹시키게 된 배경에는 어린 나이임에도 사케를 만들기 위해 쏟은 노력들과 더해서 여태껏 마셔 본 상당히 많은 양의 니혼슈라는 실질적인 증거들을 통해 여러 사케텐들에게 전해진 유우이치씨의 진심이 담긴 태도에 있었습니다.
3. 성공적인 데뷔 그 이후의 이야기
아버지와의 ‘하세가와 사케텐과 거래를 성사시켜라’라는 약속을 1년 2개월만에 성공적으로 완수한 유우이치씨는 타카기주조의 주욘다이와 쿠라모토-토지였던 타카기 아키츠나씨를 동경해가며 주욘다이를 목표로 삼아 양조 기술을 갈고 닦습니다.
그리고 2020년, 니후다자케의 프리미엄 라인업 ‘Brilliance’가 탄생합니다. 각 지역에서 유명한 쌀들을 정미율을 높여 높은 퀄리티로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2020년 방송된 다큐멘터리에선 타카기 아키츠나씨가 추천하는 니혼슈로 니후다자케가 거론되기도 했으며 이후에 양조장 모임이나 각종 행사에 만나기도 하는 등, 본인이 양조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자 양조업계에서 가장 존경했던 사람과 직접적인 연(縁)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2015년 자신의 첫 술을 내놓는 것을 시작으로 2026년에는 전국의 사케 판매점에 본인의 니혼슈를 놓는 것을 물론이고 자신의 롤모델이 자신의 니혼슈를 다큐멘터리에서 추천하는 단계까지 약 10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직 유우이치씨는 32세.
유우이치씨가 어떤 미래를 그리냐에 따라 본인 앞에 등장할 벽들의 높이와 무게가 달라지겠지만, 그 규모가 어떻게 되었든 유우이치씨는 본인만의 방법으로 벽을 허물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유우이치씨가 갖고 있는 본인의 힘
짧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제가 니혼슈에 관심이 생기고 영상과 웹사이트를 만들고 운영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입니다.
원래 간호사였기에 영상 제작과 홈페이지 제작에 대한 지식은 초등학생때부터 대학교 전공을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목표를 정하자마자 벽에 부딪혔습니다.
벽에 부딪혔다는 뜻은 그 방향에 내가 정한 길이 있다는 뜻이고 이 벽을 넘는다면 내가 정한 방향에서 한 단계 발전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영상은 파이널컷 프로라는 프로그램을 쓰고 홈페이지는 Hostinger라는 도메인 제공업체의 서비스를 이용하며 디자인은 가장 유명한 WordPress와 Elementor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글로는 정보가 많지 않았기에 모든 정보를 영어로 습득했었기에 처음부터 모르는 것이 정말 많았습니다. AI가 발전했다고 하지만 지금 2026년에서도 Ai는 정확한 정보검색도 아직 못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AI를 활용해서 정보를 얻고 적용해보는 것이 어느정도는 도움이 되지만 오히려 돌아가는 길이 될 때도 많았습니다. (엄청 오래된 출처를 사용하거나 삭제된 게시글을 인용할 때도 있고 파이널컷 프로에 대한 질문에서 프리미어 프로 편집툴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은 거의 매일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반년동안 매일 정보를 검색하고 적용해보고 오류가 있다면 고칠 때도 있고 어느정도 한계와 협상해서 적절한 선을 찾기를 수십번.
그렇게 지금의 웹사이트와 영상 촬영 및 편집 기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1년 뒤에 지금의 웹사이트나 영상을 본다면 더 발전이 필요한 부분이 보이겠지만 1년 전 웹사이트나 영상을 지금과 비교했을 때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해보자면 그 간 정말 많은 벽들을 넘어왔다고 자부합니다.
유우이치씨도 저와 꿈은 다르기에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다르지만 나아가는 방식은 같거나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토지가 없었기에 아버지와 함께 양조를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니혼슈를 즐기지 않던 부자가 매일 밤 고통스러운 시음회를 통해 여러 종류의 니혼슈를 마시고 미각을 발달시키기부터 시작. 양조장 설비또한 금전적 한계에 부딪혔으나 전공을 살려 자가제(自家製) 자동설비를 구축.
그리고 무려 단 1년 2개월만에 일본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케 판매점에 본인의 술을 올려놓게 됩니다.
이 기간동안 유우이치씨는 수많은 크고 작은 벽들을 헤쳐 나왔을 것이고 그렇기에 지금도 매 년 업그레이드된, 매력적인 니혼슈들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내 생각) 및 개담테(개성이 담긴 테이스팅노트)
세계 어딘가에서 니혼슈를 좋아해 사카구라 미야모토에 방문해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사카구라 미야모토는 니혼슈를 여러분의 기억에 맛과 향이 좋은 술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 드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니혼슈를 단순한 술에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만들고 싶으신 분들, 니혼슈를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으신 분들은 사카구라미야모토 멤버쉽에 가입해 함께해주세요. 이하 컨텐츠는 멤버쉽 전용 컨텐츠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