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g를 태워버린 뜨거운 열정과 치밀한 설계로 만들어진 걸작. 토요비진(東洋美人)
최근에 사케를 네 병을 샀다.
니이가타현의 무라유우(村祐)
미야기현의 미야칸바이(宮寒梅)
야마구치현의 토요비진(東洋美人)
치바현의 칸기쿠(寒菊)
네 종류 모두 내가 좋아하는 ‘안주 없이도 쭉쭉 들어가는 사케’들이었다.
뭐, 무라유우는 음식을 곁들인다면 그 매력이 확 폭발하는 사케이긴 하지만.
오늘 알아 볼 양조장은 이 네 병의 사케 중 가장 맛있게 마셨던 니혼슈를 만드는 양조장이다.
묵직한 포도향과 환상적인 감칠맛이 부드럽게 올라오는 니혼슈.
그 니혼슈의 이름은 토요비진. 그 중에서도 원래는 초밥용으로 개발된 쌀을 35%까지 깎아 만든 사케, 미즈호노유메(瑞穂の夢)가 오늘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그러면 지금부터 야마구치현에서 토요비진을 만들고 있는 스미카와주조(澄川酒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역사
1. 긴 역사의 토요비진. 그리고 순애정신
1921년 야마구치현의 위쪽에 위치한, 차가 없으면 상당히 가기 힘든 곳인 하기시(萩市)에 스미카와 주조가 설립된다.
토요비진은 양조장이 설립되면서 가장 먼저 출시된 라벨로서 그 역사가 100년이 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현재 니혼슈 시장의 흐름인 ‘모던사케’ 혹은 ‘우마구치’의 물줄기속에서 트렌디한 맛을 내고 있으며 해외의 팬들까지 매료시키고 있는 라벨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는 것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많은 클래식한 니혼슈들이 백년, 길게는 200년에서 300년 넘게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그 중에서 마시기 쉬운 계열의 포지션을 담당하는 니혼슈는 찾기 쉽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하쿠츠루(白鶴)나 켄비시(剣菱), 월계관(月桂冠) 등이 긴 역사를 가진 클래식한 타입의 사케입니다.)
글로벌하게 인지도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니혼슈들은 빨라도 1970년대에 새로 탄생한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토요비진은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다른 오래된 라벨들과 궤를 달리 하기 때문에 이 이름이 가지는 의미에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바로 순애정신입니다…
토요비진의 유래는 1대 쿠라모토(양주장 주인)가 죽은 아내를 떠올리며 ‘동양의 미인’이라는 뜻을 담아 토요비진(東洋美人)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순애의 힘을 담고 있는 라벨이지 않나요…? 전 그렇습니다. 🥰
그러나! 처음부터 양조장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니혼슈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지역내에서만 거래되는 술이었으며 판매량도 높지 않아 아버지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영업을 뛰거나 배달을 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고 현 쿠라모토 토지 스미카와 타카후미(澄川宜史)씨가 얘기합니다.
순애정신을 담은 토요비진이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하기 시작한 시기는 현재 쿠라모토이자 토지를 역임하고 있는 4대 쿠라모토, 스미가와 타카후미씨가 양조장에 오고난 뒤부터입니다.
2. 토요비진이 날아오르기까지 (1) - 4대 쿠라모토이자 토지. 스미가와 타카후미씨의 취임.
스미가와 타카후미씨는 1998년 도쿄농업대학을 졸업하고 양조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전에 스미가와씨의 니혼슈 세계관을 바꾼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이 있는데, 이는 농업대학 학외 실습때 만난 타카기 주조의 타카기 타츠고로(高木辰五郎)씨와의 만남입니다.
쿠라모토이면서 사케 양조의 총책임자인 토지의 역할까지 맡는다는 것이 현재에는 보편화가 되어있지만 2000년대 초반에만해도 쿠라모토와 토지는 완전히 다른 역할을 하고 있었고 양조에 있어서 토지의 권한은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주욘다이를 데뷔때부터 성공시킨 타카기 타츠고로씨의 쿠라모토-토지는 그간의 패러다임을 바꿔버렸는데요.
그의 밑에서 양조를 배운 스미카와씨는 양조에 대한 마음가짐도, 일 처리 방식도, 추구해야 하는 맛의 방향성도 강렬하게 영향을 끼칩니다.
타카기주조에서 한 달이 안되는 기간동안 양조에 대해 배운 뒤 양조장에 돌아온 스미가와씨는 은퇴를 고려중이던 토지에게 부탁해 은퇴를 1년 미룹니다.
그 1년동안 베테랑 토지와 스미가와씨는 밤낮 양조장에서 같이 일하며 양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적용해보며 시행착오를 거듭합니다.
‘네!’밖에 말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학창시절 운동부였기에 이미 위계질서에 익숙했던 스미가와씨. 1년동안 타이트한, 밀도있는 시간을 보내며 토지로부터 양조기술을 배웁니다.
그렇게 1999년, 토지가 예정대로 은퇴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스미가와씨가 쿠라모토이자 토지로서 자신의 선조들이 백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온 양조장과 그 양조장에서 만드는 유일한 라인업, 토요비진을 세상에 잘 만들어 내보내는 것이라는, 가장 어려운 일이 남아있었습니다.
처음 양조를 했을 때, 약 10kg가 빠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스미가와 타카후미씨의 첫 토요비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스미가와씨는 사케 판매점에 자신의 술을 알리기 위해 도쿄행 심야버스를 대절해서 사케를 싣고 도쿄로 향했습니다.
3. 토요비진이 날아오르기까지 (2) - 4대 쿠라모토이자 토지. 스미가와 타카후미씨의 취임.
스미가와씨가 향한 곳은 사케 감평회 ’Sake Competition’을 주최하는 곳으로 유명한 니혼슈의 성지, 하세가와 사케텐.
그 외에도 여러 사케 판매점을 돌아다니며 계약을 위한, 토요비진을 일본 전국에 그리고 세계에 알리기 위한 첫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영업을 마치고 야마구치현으로 돌아왔으나 답신은 어느 곳에서도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본인의 첫 작품은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했으나 우리는 이미 이 사케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스미가와씨는 좌절하지 않고 본인의 감각을, 양조 기술을 단련합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토요비진은 점점 많은 사케판매점으로부터 인정받게 되고 니혼슈 팬들에게도 착실하게 인지도를 쌓아갔습니다.
(처음 나온 토요비진의 맛은 지금과 다르게 알코올 향이 강하게 올라오는 타입의 사케였다고 합니다.
목넘김이 부드럽고 각종 감칠맛과 과실향이 주를 이루는 현재의 토요비진과는 전혀 다르니 여기까지 오기 위한 스미가와씨의 변화를 위한 노력을 우리는 맛 볼 수 있습니다. )
당시 25세였던 스미카와씨는 후쿠오카에서 유명한 지자케 전문 사케판매점 ‘토도로키 사케텐’의 토도로키씨와 긴자의 유명 음식점을 돌아다니며 음식과 사케의 궁합을 연구하고 미각을 단련하기도 했습니다.
(위 내용은 후쿠오카에서 살 때 자주 이용했었던 사케판매점의 사장님 에피소드가 나와 신기해서 올렸습니다.)
4. 토요비진이 날아오르기까지 (3) - 2013년 야마구치현의 폭우와 함께 일어난 기적.
토요비진이 도쿄를 중심으로 해서 전국으로 인지도를 쌓고 있던 2013년, 야마구치현에 폭우가 닥칩니다.
폭우는 양조장 안까지 들어와 각종 시설들이 순식간에 침수되어 사용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싱가폴에서 이 연락을 들은 스미가와씨는 곧바로 귀국했으나 양조장까지 가는 길 또한 산사태로 교통이 마비되어 쉽지 않았습니다.
겨우 돌아와서 마주한 것은 진흙으로 뒤덮인 양조장과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양조중이었던 사케들과 기계들.
막 뜨겁게 성장중이었던 토요비진이었기에 갑자기 들이닥친 막대한 피해는 재정적인 피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태까지 뜨겁게 달려온 스미가와씨의 열정에 세상이 배신하지 않았던 걸까요.
전국의 사케판매점과 양조장에서 매일 30명에서 40명의 자원봉사자가 교대로 오며 복구를 위해 힘을 썼고, 15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양조장은 다시 설 수 있게 됐습니다.
비록 재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계들을 사고 양조장도 재건축 및 증축을 위해 5억엔의 빚을 지게 됐지만, 양조에 뜨거운 열정을 가졌으며 추구하는 바가 현 최고의 사케, 쥬욘다이인 스미가와씨였기에 5억엔의 빚을 안고 가면서도 토요비진은 승승장구합니다.
스미가와씨의 양조 스타일
수치화
스미가와씨는 감각보다 수치에 집중하는 스타일입니다.
양조에 필요한 것은 물리와 화학 그리고 생물학이라고 하며
감각보다는 논리의 영역인 학문의 힘을 빌립니다.
양조에 있어서 가능한 모든 것을 수치화해서 변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
그것이 스미가와씨의 양조에 있어서 중요시 여기는 것입니다.
쌀
스미가와씨는 니혼슈를 쌀을 통과한 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스미가와씨의 니혼슈에는 쌀마다 갖고 있는 다른 감칠맛들이 베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제가 마신 ‘토요비진 미즈호노유메’의 감칠맛은 너무 뛰어났습니다.
설명보단 역시 직접 마셔보는게 빠르기에, 혹시 발견하신다면 꼭! 사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사카구라 미야모토가 추천하는 단 한 병!?!?!
토요비진에서 전개하는 수많은 라벨 들 중에서 제가 추천하는 딱 한 병을 꼽자면, 저는 압도적으로 이번에 마신 ‘미즈호노유메’를 뽑겠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라벨이자 스미가와씨의 사케에 대한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준도이치즈’라벨도, ‘지팡구’도, 그 외 여러 라벨들을 병 째 마셔봤고
이자카야에선 콜라보 토요비진이나 한정판도 잔으로 마셔봤습니다만, 접근성 면이나 가격면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미즈호노유메 입니다.
맛도 맛이지만 초밥용 쌀로 양조를 해서 이런 개성을 가진 니혼슈를 만들었다는 것에 큰 가산점을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