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를 너무나 사랑하는 양조장.
2024년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던 순간.
나와 내 와이프는 1차로 맛있는 식사를 먹고 집에서 2차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 마시려고 아껴뒀던 니혼슈가 있었는데, 바로 오늘 소개할 센킨이다.
그 중에서도 모던 시리즈의 하츠부네 나카도리.
나는 비록 1차 때 많이 취해서 몇 잔 마신 뒤 기억도 없이 곯아 떨어졌지만, 와이프는 혼자 1월 1일 밤을 즐기다가 잤다고한다.
이 전부터도 센킨은 어떤 라벨이던 상관없이 믿고 마시는 맛있는 사케 중 하나였는데, 그 중심에는 강력한 ‘에도로 돌아가자’라는 코어 아이디어를 가슴에 품고 양조를 하는 쿠라모토/토지 형제. 우스이 형제가 있었다. ▼
역사
1. 설립부터 현재의 센킨이 나오기까지.
토치기현의 사쿠라시에서 1806년. 센킨 주조가 세워집니다.
올 해(2026년) 기준으로 220년이 되는, 역사가 긴 양조장입니다.
현재 토치기현을 대표하는 사케인 센킨을 만드는 센킨주조는 처음부터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던 양조장은 아니었습니다.
역시 이 당시의 니혼슈 트렌드는 질보다는 양.
미식(美食)보다는 그저 취하고 싶을 때 마시는 술.
페어링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이니 술의 섬세함을 기대하긴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1900년대 후반쯤이 되어서야 일식에 어울리는 니혼슈가 니혼슈의 주류를 이루었기에 센킨주조 또한 이에 맞춰 와쇼쿠(전통적인 일식 요리)에 맞는 사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역시 센킨은 태어나기 전이었고 양조장에서 팔고 있는 사케는 이름도 없는, 그저 대형 양조장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니혼슈가 수입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니혼슈를 통한 수입이 많을리는 만무했고 늘 적자에 이익은 계속해서 감소했습니다.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중단된 거래는 양조장에 큰 위기였고, 양조장은 청산됩니다.
2008년, 양조장이 청산됨과 동시에 우스이 형제는 양조장을 그대로 ‘주식회사 센킨’으로 바꿔 전면 개정에 들어갑니다.
비로소 양보다는 품질을 우선시하는 양조의 단계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2. 2008년, 형제의 첫 사케, 센킨 태어나다: 산미는 Red Fl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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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인 우스이 카즈키(薄井一樹)씨와 동생 우스이 마사토(薄井真人)씨가 만든 첫 센킨의 특징은 ‘의도된 산미’였습니다.
소믈리에로 일했던 당시 화이트와인을 돋보이게 하는 ‘산미’의 매력을 알고 있었던 카즈키씨는 니혼슈에도 이에 걸맞는 산미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산미가 두드러지는, 새콤달콤한 사케를 만들었는데, 이 새콤달콤하다라는 특징은 지금까지도 센킨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맛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2008년까지만 해도 니혼슈의 강한 산미는 레드플래그였습니다.
산미가 강하다는 것은 과발효 혹은 기술부족이나 미흡한 설계의 지표 중 하나로 여겨지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센킨을 맛 본 아버지(전 대 쿠라모토)나 연령대가 높은 사케 팬들에게는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엔 일식에 어울리는 깔끔하고 드라이한 사케가 주류였던 것을 생각하면 새콤달콤한 사케가 이질적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주류이던 사케 맛은 닷사이나 쿠보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그러나 시음회에서 센킨은 젊은 여성들에게 호평을 얻게 됩니다.
그들에게 원래 니혼슈 시장에서 주 타겟이 아니었던 ‘젊은 여성’의 호평을 얻었다는 것은 큰 의미로 다가왔고 형제가 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3. 2024년, 주식회사 센킨의 코어 아이디어. 에도가에리(江戸帰り)
주식회사 센킨의 도전이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24년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헤이세이시대에 센킨 특유의 공격적인 새콤달콤함을 무장한 채, 우스이 형제는 ‘에도로 돌아가자’라는 뜻의 ‘에도가에리(江戸帰り)’ 를 양조장의 목표로 삼습니다.
에도시대는 양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대로서, 지금 90%이상의 양조장이 쓰고 있는 소쿠죠의 원형이 되는 ‘키모토(生酛)’방식을 확립되고 널리 쓰이게 된 시대이자 과발효를 방지하고 안정적으로 니혼슈의 맛을 빚기 위해 추운 시기에 양조를 진행하는 ‘칸즈쿠리(寒造り)’가 쓰인 시대입니다.
참고
에도시대때 새롭게 개발되거나 보편화된 기술들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1. 키모토(生酛): 누룩과 섞인 찐 쌀을 나무 막대기로 저으며 쌀을 부시고 질게 만드는 작업. 양조장에 상주하는 균들이 발효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2. 칸즈쿠리(寒造り): 안정적으로 발효시키기 위해 추운 날씨 혹은 추운 지역에서 발효를 진행하는 방식.
3. 3단시코미(3段仕込み): 발효 과정에서 찐 쌀, 누룩, 물을 3번에 걸쳐 추가로 넣으며 발효하는 방식. 한번에 발효시키고 싶은 양 전부를 넣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발효가 되고 발효에 필요하지 않은 잡균들로부터 발효 과정을 지켜낼 수 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에도시대만의 특징이 있겠지만, 우스이형제가 가장 본인들의 에너지를 넣은 부분은 바로 ‘키모토’입니다.
본인들은 키모토가에리(키모토로 돌아가자)라고도 부를 정도로 키모토에 진심이었고 생산되는 모든 사케들을 키모토방식으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키모토만을 고수한다고 형제들은, 그리고 사케 팬들은 에도가에리라고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양조의 오리지널리티를 찾아가려는 그들의 노력은 제조방식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케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유기농 재배만을 하는 농가와 계약하여 오직 세 가지 쌀, 야마다니시키, 오마치, 원원종 카메노오만을 양조에 쓰고 있습니다. (원원종 카메노오에 대한 설명은 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가지 쌀을 골고루 배합하여 만든 시리즈 ‘카모스’. 언젠가 살 기회가 생기면 꼭 사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스테인레스가 아닌 나무통에 숙성하는 키오케지코미, 효모 무첨가(인공효모)도 양조에 적용하고 있는 중입니다.
원원종 카메노오란?
양조에 적합한 술 중 카메노오 라는 술쌀이 있다.
메이지시대 초기에 야마가타현에서 발견된 쌀품종으로 알려지며 널리 쓰이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종자관리가 엄격하고 철저하게 되던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시대에 왔을 땐 이미 가장 초창기의 카메노오의 모습은 찾기 힘들어졌고 오리지널 카메노오의 모습은 점차 희석되어 현 시대에 쓰이게 되고 말았다.
카즈키씨는 에도가에리 프로젝트를 위해선 에도시대에 기원한 이 ‘오리지널 카메노오’를 찾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했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종자은행 GENE BANK와 협업하여 8년의 노력 끝에 당시 이미 희석되어버린 오리지널 카메노오의 DNA를 완전히 복원하는데 성공, 농림수산성에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두 형제의 꿈
에도가에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양조장에 완전히 에도시대가 스며들어 전량 키모토 생산에 이어서 전량 키오케지코미, 효모 무첨가(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효모 사용), 전량 원원종 카메노오를 사용하여 양조되게 하는 것을 에도가에리 프로젝트의 완성이자 성공으로 카즈키씨는 보고 있으며 양조장 설립 222주년인 2028년을 커트라인으로 정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현재는 쌀에만 국한되어 있는 계약농가를 통한 유기재배를 양조장이 위치한 전 지역으로 확장시켜 먹는 쌀에도, 야채 및 채소에도, 과일 등 전부 유기재배로 운영되는 ‘에도 타운’을 건설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
역시 나침반 방향이 정해져있는 사람의 행동에는 야망이 있고 용기가 있으며 향기가 있다.
오늘은 그들이 젓는 나무막대기에 힘을 보태고 싶다.
마치며(내 생각)
세계 어딘가에서 니혼슈를 좋아해 사카구라 미야모토에 방문해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사카구라 미야모토는 니혼슈를 여러분의 기억에 맛과 향이 좋은 술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 드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니혼슈를 단순한 술에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만들고 싶으신 분들, 니혼슈를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으신 분들은 사카구라미야모토 멤버쉽에 가입해 함께해주세요. 이하 컨텐츠는 멤버쉽 전용 컨텐츠입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https://sake-wadaya.com/17427/
https://www.nippon.com/ja/guide-to-japan/gu002008/
니혼슈 잡지 단츄(Danc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