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구라 미야모토 네번째 술 - 와카무스메

위치: 야마구치현 

image 2 16 26 at 8.36 pm

양조장: 新谷酒造(신타니주조) 

닷사이 양조장이 있는 걸로 유명한 야마구치현의 작은 강자. 와카무스메를 소개하고자 한다. 

후쿠오카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야마구치현의 사케샵에 가면 많이 보이는 와카무스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흔히 若娘(젊은 딸) 이라고 오해하기도 쉬울 수 있는데 (내가 그랬다.) 

한자표기는 和歌娘, 일본의 정형시 와가(和歌) 를 부르는 소녀를 연상하게 하는 이름이다. 

와가는 주로 일본의 계절 변화에 있어서 섬세하게 변화하는 것들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기에 실제로 와카무스메에서 전개하는 라벨 또한 

그리고 와카무스메에서 전개하는 라벨또한 月草(달맞이꽃), 薄花桜(벚꽃), 燕子花(제비꽃)등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subject (1)
subject
subject
hk637ss asiatic dayflower 5588838 1280
couleur japanese cherry blossom 2168858 1280
pexels lichtblick800 32090477

실제 꽃 사진을 보고 라벨을 본다면,네이밍 센스와 라벨, 그리고 실제 꽃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양조장의 시작은 올 해로 99년째가 되는, 1927년으로 거슬러간다. 

1대 창업자 신타니 쿠마요시씨가 야마구치현의 문 닫은 양조장을 인수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걸로 와카무스메의 역사가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 2대 쿠라모토가 양조장을 이어받은 뒤부터 와카무스메는 야마구치현내에서 큰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도 그렇게 길진 않았고, 3대 쿠라모토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없던 상황에서 손자가 쿠라모토(양조장 주인)자리를 이어 받았으나 

오랜 세월동안 와카무스메의 양조를 책임지던 토지(장인)이 고령으로 은퇴하는 바람에 양조장은 파산 위기를 겪게 된다.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신타니주조는 작은 양조장이라는 점이다.

slide03

이런 소규모 양조장에서, 몇 십 년 전 시대에 (그 때는 챗지피티나 백종원의 요리비책같은 게 없던 것을 생각하자) 양조를 총책임하는 토지가 은퇴한 후 사케의 맛에 대한 변화는 피할 수 없었고 이런 변화는 양조장의 경영 문제로 직결되었기에 파산 위기를 겪게 되었다.

이 순간부터 양조장은 쿠라모토(사장) 부부의 동반 경영 체제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헤이세이 19년 (2007년), 3대 쿠라모토는 양조장의 사장과 토지 역할 즉, 술의 총책임과 동시에 양조장의 경영까지 모두 책임지고 이끌어가는데 박차를 가하고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3대 쿠라모토의 말로는 순식간에 지나간 10년이라고 했다. 

그 10년간 사케의 맛은 와카무스메가 내고 싶은 맛으로 점점 찾아갈 수 있었고 니혼슈 팬들 사이에서도 와카무스메는 맛있는 니혼슈. 라는 인지도를 얻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시간도 잠시, 양조장의 지붕을 받치는 대들보가 손상되어 지붕이 무너질 위기에 처해 다시 한 번 파산의 위기를 겪게되지만, 양조장을 이전 후 다시 양조를 시작한다. 

.

.

.

시간이 지나 지금까지 야마구치현의 작은 양조장 신타니주조는 해외의 여러 컨테스트에서도 입상하고 일본 국내의 니혼슈 팬들 사이에서도 맛있는 사케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으며 한국의 니혼슈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사케로 거듭나게 되었다.

밑 글은 와카무스메 양조장의 토지(사장의 아내 분)가 직접 남긴 글인데, 시간이 된다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힘을 합쳐 고난을 이겨 낸 사람의 글에는 힘이 담겨 있기 때문에 내가 요약하는 것보다 원문을 그대로 번역해서 옮긴다.


‘논으로 둘러싸인 시골에서 자유롭게 자랐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남자아이들에게서 “분코(ブンコ)”라고 불렸고, 담임선생님이 지어준 별명은 “분짱(ブンちゃん)”이었다. 술을 잘 마시는 아버지의 저녁 반주 자리에 함께하며 술안주를 몰래 집어 먹는 것이 일과였다.

단기대학 졸업 후 일반 기업 영업부에 어시스턴트로 취직했다. 입사 2년째에 회사 설립 이래 최초의 여성 종합직 1호로 발탁되었다. 치매 환자의 안전 대책으로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병원과 시설에 판매하러 다니는 가운데 의료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간호학교에 입학했다. 4년간의 학생 생활을 거쳐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고 병원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원래 술을 좋아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결혼 후 양조장으로 시집오게 되었다. 이 해 전국 신주 감평회에서 오랜 염원이었던 금상을 처음 수상했고, 시어머니로부터 “복을 불러오는 며느리”라는 말을 들으며 기뻐했다. 또한 그 일본술을 마시고 그 맛의 뛰어남에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결혼 다음 해 장녀를 얻는 기쁨도 잠시, 갑자기 토지가 병으로 인해 양조장을 떠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양조 직원과 사무 직원도 차례로 떠나, 노후화가 진행된 양조장과 부부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폐업을 강요받는 상황 속에서 남편은 혼자서 술을 빚기로 결심했고, 헤이세이 19년(2007년)에 양조장의 일부를 1년 내내 술을 담글 수 있는 사계양조장으로 개조했지만 생활은 막다른 상황에 이르렀다.

다시 간호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등에 업고 양조장에 다니며 간호사와 양조 일을 병행하는 생활이 약 8년간 계속되었다. 그리고 헤이세이 28년(2016년), 한 젊은이가 양조장의 문을 두드리면서 전기가 찾아왔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이곳에서 술 빚는 수업을 받게 해달라. 이탈리아에서 일본술을 만들고 싶다.” 이 말에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스스로도 간호사를 그만두고 술 빚기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이 젊은이는 이후 농구치 나오히코 연구소에서 양조를 배우고, 현재는 이탈리아에서의 양조를 위해 귀향하여 준비 중이다.)

그러나 술 빚기에 전념하자마자 이번에는 냉장 양조장의 들보가 손상되어 붕괴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다시 찾아온 폐업의 위기 앞에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고, 시간만 흘러갔다. 정말 이것으로 끝인가, 어디에도 길은 없는가를 스스로에게 되묻다 결국 다시 한 번 이곳에서 술 빚기의 모든 것을 재검토하고 국제 콩쿠르에 도전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도 안 된다면 포기하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결과 온 힘을 다해 빚은 술은 프랑스의Kura Master 준마이슈 부문 골드상, 브뤼셀 국제 콩쿠르 SAKE selection 준마이슈 부문 최고위 플래티넘상을 수상했다.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다 한 뒤에. 부부는 함께 양조장의 이전을 결심했고, 헤이세이 30년(2018년) 새로운 출발과 함께 남편으로부터 토지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4대째 토지로서 무거운 바통을 손에 쥐고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

.

이번에 야마구치에 가서 산 와카무스메 쥬니히소쿠, 술을 잘 마시지 못해 4 일에 걸쳐 3번 나눠 마셨다.

img 7624
img 7645
img 7629

너무 달지 않은 계열에 안심 샤토브리앙과도, 계란말이에도, 샐러드에도, 심지에 따뜻한 나베와도 잘 어울렸다. 

정확히는 나베 안의 야채들과 매우 잘 어울렸다고 해야겠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사케의 알콜감이 조금씩 강해지긴 했으나 끝까지 맛있는 상태로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오히려 조금씩 맛이 변한 덕분에 질리지 않고 세 번에 걸쳐서 나눠마시는 것도 재밌었다. 

.

.

.

많은 수상이력들이 그 사케를 맛있다고 단정지을 순 없다. 그러나 작은 양조장에서 부부가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고 야마구치에서 이름을 날리기까지, 그리고 세계의 사케 콘테스트에서 수많은 수상을 하기까지. 

쿠라모토이자 토지인 이 부부의 이런 과정이 담긴 양조가 와카무스메를 더 맛있게 만들었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 니혼슈의 팬들도 혹시 사케를 살 일이 있으면 디자인과 이름을 매칭시켜보고 꽃 이름을 검색해보고 마셔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꽃이 생각보다 이쁘다.

병이랑도 잘 어울린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