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케를 품기에 지구는 너무 좁다. 닷사이(獺祭)

dassai thumb

니혼슈에 빠지게 된 계기이자 내가 마신 제대로 된 첫 사케이지만 

너무 늦게 소개하게 된 이것.

이 사케를 담기엔 지구는 너무 좁다. 

최근엔 우주에서 발효를 시키는데까지 나아가 버린 바로 그 사케

면세점 기념품 사케 1순위이자 

(아마도) 전국 돈키호테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사케. 

바로 주욘다이 

 

kamigataichiba 1960

장난이고 닷사이가 오늘 소개할 사케 되겠다.

오늘, 닷사이의 처음부터 현재까지에 대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닷사이에 대해 얘기해보자.

닷사이의 역사 

닷사이를 만드는 아사히주조(주식회사 닷사이)는 1770년에 지어진 양조장을 1910년 사쿠라이 키이치 씨가 인수하며 사쿠라이 사카바(桜井酒場)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사쿠라이 사카바는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8년, 지금의 아사히주조(旭酒造)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이 때 만들어진 이름 ‘아사히주조’는 지금까지도 맥주회사의 자회사냐, 신문회사의 자회사냐. 라는 질문을 듣는다고 한다.) 

.

.

원래부터 지금과 같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양조장은 아니었다. (여느 양조장들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아사히후지’라는 후츠슈를 만들었으며 전후 경제 성장기의 영향을 받아 판매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1973년 오일쇼크가 터지고 아사히주조는 하락세를 겪는다. 그렇게 1976년 , 3대 쿠라모토가 될 사람이자 아사히주조를 현재의 위치까지 올려놓는데 큰 역할을 한 ‘사쿠라이 히로시’씨가 양조장으로 돌아온다. 

(참고: 아직 이어받은 건 아니다. 이 때까지 쿠라모토는 2대, 사쿠라이 히로지씨였다. 오타 아님. 히로’지’씨가 2대 , 히로’시’씨가 3대) 

(참고2: 개인적으로 아사히 후지 한 번 마셔보고 싶다.)

아사히후지

닷사이의 탄생, 3대 쿠라모토 ‘사쿠라이 히로시’씨의 경영 인수

양조장이 어려움에 처하면서 가업을 위해 양조장에 복귀한 히로시 씨. 그러나 아버지인 ‘히로지’ 씨는 경제 성장기(오일쇼크 이전)때의 판매 전략을 강하게 고수했기에 판매전략을 바꿔야만 양조장이 살 수 있다는 히로시씨의 의견과 충돌이 잦았고 결국 양조장을 나가게 된다. 

부자관계는 아버지이자 2대 쿠라모토인 히로지씨가 죽기까지 회복되지 않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히로시씨는 1984년, 양조장 3대 쿠라모토로 취임하게 된다. 

1984년 취임 당시, 매출액은 10년 전의 3분의 1로 줄었고 사케 전국 소비량도 감소 추세에 있었다. 

*쇼츄, 와인, 위스키, 맥주 등의 소비량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당시 사케의 주류는 후츠슈(정미율이 낮고 양조용 알코올이 들어간 타입의 사케)였고 아사히후지도 마찬가지였다. 

사쿠라이 히로시씨는 전국적인 니혼슈의 주류(mainstream)이 후츠슈인 것을 알았지만 그 주류가 하락세인 것도 알고 있었기에 하락세인 시장에 투자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전 라인이 준마이다이긴조인 ‘닷사이’이다. 

사케쌀은 전부 사케쌀에 가장 최적화된 품종, 야마다니시키만을 사용했으며 지역 상권을 겨냥하기보다 도쿄 시장을 겨냥하는 것으로 사업의 시작을 알렸다. 

그 외에도 토지에 의존하는 양조가 아닌, 과학기술과 직원들의 체계적인 관리에 의해 1년 내내 일정한 품질의 사케를 만드는 방식을 채택했으며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거의 유일한 니혼슈가 되었다. 

figure 1

(초록색은 니혼슈 섭취량, 주황색은 닷사이의 운송량이다.)

출처: https://www.nippon.com/en/features/c00618/

 

현재

2016년을 기점으로 사쿠라이 히로시씨는 자신의 아들인 ‘사쿠라이 카즈히로’씨에게 4대 쿠라모토(양조장을 넘어서 주식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에 회장이 맞는 표현이지만) 를 맡겼다. 

히로시씨가 후츠슈에서 준마이다이긴조로 라인업을 변경하고 도쿄를 시작으로 하여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였다면, 카즈히로씨는 일본을 넘어 전세계로 닷사이를 알리는데 힘을 쏟았다. 

뉴욕에 ‘닷사이 블루’를 만드는 양조장을 지었으며 

파리에는 중심가에 닷사이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are de triomph

약 40여개의 나라에 수출되고 있으며 글로벌 판매량은 전체 수익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해외 시장에서의 매출이 회사 전체 매출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미국, 유럽 순이다.) 

그리고 더 최근엔 NOTE의 내 글에도 댓글을 달아주셨다.

말풍선

1984년에 9700만 엔이었던 수익은 2010년에 13억엔, 2022년엔 160억엔을 돌파, 2025년엔 213억엔을 넘어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최근엔 언젠가 인류가 우주에서 살 날이 왔을 때 뉴욕의 닷사이블루 양조장처럼 달이나 다른 우주공간에서도 비슷한 양조장을 차리기 위해 진행한 데모 타입의 실험으로 우주에서 쌀을 발효시키는 실험을 진행, 성공적으로 닷사이 문을 만들었다. 

(모로미까지만 우주정거장에서 발효를 시켜 지구로 회수, 모로미를 짜고 병입하는 과정은 일본에서 진행했다.) 

와이프와 점심거리를 사서 귀가하던 도중 버스에 붙어 있던 광고판을 보고 

‘마실 수 있을까?’ 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가격을 보고 ‘음!’ 

이라고 하고 바로 잊었다. 

screenshot 2026 05 11 at 4.51.20 pm

마치며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닷사이는 내가 인생을 살아 갈 방향을 정하는데 큰 도움을 준 사케이다. 

간호사를 하고 있었으나 평생 간호사를 하기엔 내 인생에 뭔가 다른 게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하루 종일 하던 시기, 퇴근 후 마신 닷사이가 나를 사케의 길로 접어들게 했고 일본어 공부와 사케 공부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까지 갖게 되었다. 

이 모든게 닷사이 덕분이라고 하기엔 꽤나 과장된 표현이지만, 닷사이가 어느 정도 내 방황을 잡아주었다는 것엔 의심할 수 없다. 그정도로 당시에 영향력이 컸다. 

니혼슈를 마시면 마실수록,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매력적인 양조장들이 많았고 매력적인 양조장이 만든 니혼슈들은 역시나 맛있었다. 

아예 배경을 모르고 선물로 받은 사케들도 맛있었으며 이런 경험들이 합쳐 나로 하여금 니혼슈가 점점 더 좋아지게 만들었다. 

닷사이 양조장에 대한 조사도 이렇게 시간들여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인데, 역시나 아사히주조는 매력적인 양조장이었다. 

코쿠류와 같이 준마이다이긴조를 거의 초창기에 상업화시킨 양조장들도 있지만, 과감한 결단력으로 라인업이나 시스템을 전부 갈아엎고 도쿄 시장, 메이저 시장을 목표로 한 ‘사쿠라이 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그 정신덕분에 닷사이라는 매력적인 사케를 만드는 양조장이 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해외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케가 되었고 닷사이 23같은 경우엔 고급 사케의 인식이 꽤 자리잡고 있어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돈 많은 사장님들도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콜키지로 닷사이 23을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쿠보타 만주도 종종 있었다.) 

1984년 사람 한 명의 생각이 40년이 지나 양조장의 매출을 220배 올렸다. 

상상으로 미래를 보았고 행동으로 옮겨 그 미래를 실현시켰다. 

그리고 2025년, 히로시씨는 홈페이지에 올린 자신의 일기에 매출 1000억엔을 목표로 삼는다고 했다. 

닷사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나는 

이번엔 닷사이 문을 마시지 못했지만,,, 

다음번엔 마실 수 있을까? 

마실 수 있겠다!!  

출처:

https://dassai.com/us/diary/005931.html (닷사이의 역사) 

https://www.nippon.com/en/features/c00618/ (사케 판매량, 닷사이의 탄생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