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에 자주 가는 니혼슈 바가 있다.
관광객들에게도 일본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명한 니혼슈바인데, 프리미엄 사케(지콘, 아라마사, 쥬욘다이, 신슈키레이 등.. ) 라인업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거기서 만나는 관광객들이 아라마사나 지콘, 쥬욘다이 사진을 보여주며, ‘이것 있어요?’라고 종업원에게 묻는 걸 볼 수 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니혼슈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나는 끝내 아쉬운 점이 있다.
왜 다들 같은 라벨을 마시는 걸까 ?
어떠한 정보를 얻고 싶으면 우리는 인터넷을 가장 먼저 검색한다.

자신이 신뢰하는 커뮤니티가 있다면 그 커뮤니티에서 검색할수도 있겠다.
니혼슈에 빠진 사람이 어떤 걸 마셔야 할 지 몰라서 인터넷에 검색해 본 뒤 일본에 왔다고 치자.
아니면 본인의 나라에 있는 니혼슈 바에 갔다고 하자.
아라마사, 지콘, 쥬욘다이, 신슈키레이, 나베시마, 우부스나, 하나아비, 히란, 칸기쿠, 샤라쿠, 덴슈, 아카부…
니혼슈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만 그 수에 비해 골라지는 라벨은 한정적이다.
그리고 이렇게 골라지는 사케들은 인터넷에서 쉽게 추천받게 되는 사케들이다.
구글에 니혼슈 추천이라고만 검색해도 7700만개의 검색 결과가 나오고, 후쿠오카의 추천 니혼슈라고 세분화시켜서 검색해도 수십만개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니혼슈는 10개 내외에서 정해진다.
정보의 양에 비해 우리들의 취향이 지나치게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는, 취향의 출처가 본인이 아닌 타인에 의해 정해졌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러 간다고 치자.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영화 평론가의 후기와 영화 속 각 장치가 포함하고 있는 의미, 영화가 갖고 있는 반전을 알고 간다면 우리는 그 영화를 순수하게 우리가 느낀 감정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판단을 위탁하여 받은 판단의 틀대로 해석하게 된다.
내 돈 주고 영화를 봤으나, 그에 대한 해석을 남한테 맡기게 되는, 반쪽자리 감상으로 남게 된다.
또 다른 케이스, 내가 간호사였을 때이다.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니 옷을 사고 싶어져서 패션 유튜브를 찾아봤다. 유튜버가 좋다고 하는 옷들은 전반적으로 이뻐보이고 소재도 좋아보였다. 바로 인터넷에서 구입을 했다.
그 중엔 실제로 소재와 마감, 디자인도 좋았던 옷들도 있었고 그냥 그랬던 옷들도 있었다.
그러나 3년 정도가 지난 지금, 그 때 샀던 옷들은 일본에 오면서 95퍼센트는 버려지거나 파자마로 입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예시는 모두 ‘감상의 위탁’에 대한 내용이다.
정보 접근에 용이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머리와 감각을 써서 물질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저지른 소비는 후회나 아쉬움을 남기는 소비가 된다.
물건에 대한 아무 충격이나 인상이 안남은 상태에서 소비를 시작했기 때문에 금방 질리게 되고, 본인만의 무엇인가로 남지 않고 일순에 사라지는 아무 의미 없는 물건이 되어버린다.
그럼 이제 니혼슈 얘기로 돌아가보자.
인터넷에서 맛있는 니혼슈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고, 모두들 입을 모아 추천하는 니혼슈를 니혼슈 바에 가서 달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아라마사 히노토리를 받았다고 치자.
그 술이 내 입에 맞을수도, 안맞을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술을 고르는데 머리를 썼느냐 라는 문제이다.
니혼슈 바에 들어가서, 라벨 디자인들을 보고 한 눈에 반해 저게 먹고싶다! 라고 느껴졌던 잘 만든 디자인의 라벨이 있었다던지,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과 잘 어울리는 니혼슈는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던지 등의 선택에 있어서의 고민들이나 사케와의 교류가 있었다면, 나는 내가 주문한 사케에 나만의 고민이 담기게 된다.
사전에 인터넷에서 조사해서 취향을 위탁해서 추천받은 사케를 달라고 하는 과정보다 내 의견과 시간, 고집이 많이 반영됐기에 이렇게 주문한 니혼슈들은 내 취향리스트에 더 안정적으로 쌓이게 된다.
그러나 어떤 술을 주문해야 좋을지 감이 안 잡힐 때도 분명히 있다.
나 또한 일단 니혼슈가 마시고 싶어 바에 갔으나, 늘 마시던 것만 마시고 싶진 않기 때문에 주문할 때 시간이 좀 소요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위탁하거나 옆에 사람이 마시고 있는 것 등, 나와 직접적으로 지금 교류하고 있는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주문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니혼슈 바의 종업원에게 내가 주문한 음식과 잘 어울리는 니혼슈를 추천받는다던지,
오늘 개봉한 니혼슈를 달라고 한다던지 얼마 안남은 니혼슈를 달라고 한다던지.
혹은 옆 손님이 방금 시킨 사케를 달라고 한다던지, 방법은 여러가지 이다.
하고 싶은 말은, 리스크를 걸라는 것이다.
사소한 리스크여도 좋다. 흥미로운 것들은 언제나 미지에서 왔다.
지금 내 인생이 재밌는 이유도 2023년의 나는 내가 일본에서 살면서 사케와 관련된 블로그를 운영하며, 이와 관련된 영상을 찍으리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나 나는 이 길을 걷고 있고, 그에 상응하는 리스크를 걸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테리를 만들고 리스크를 거는 행위는 안정적인 루틴보다 어떠한 것을 재밌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이를 통해 인생조차 재밌게 만들어지는데, 하물며 니혼슈는 어떨까. 니혼슈를 고르는 행위또한 재밌게 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 17일 저녁 8시 59분, 약 2시간 전에 저녁식사 중 잇파쿠스이세이에서 만든 크리스마스 사케, X-factor를 마셨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고 탄산이 강한 스파클링 사케임에도 불구하고 방어와도, 뜨끈한 전골과도 잘 어울려 아주 괜찮은 저녁식사를 선물받았다.
이 사케를 고른 이유는 인터넷 어딘가에서 맛있다는 글을 보고 고른 것이 아닌, 크리스마스 관련 사케를 사러 사케 판매점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센킨 유키다루마의 바로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라벨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며 양도 300ml라서 한 번에 마시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터넷에 거론되는 니혼슈들이 맛있으니 괜찮지 않은가. 라고 반론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데엔 그 이유나 근거가 어느정도는 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인터넷이나 주류의 의견을 따라 사케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것이 당신의 스타일을 죽인다는 것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팬톤 컬러북을 기준으로 색을 고른다면, 선택지는 정해진 수 안에 갇히게 됩니다. 하지만 자연 속으로 나가면 팔레트는 무한해지죠. 돌 하나만 봐도 그 안에는 수많은 색의 변주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정확한 색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페인트 한 통조차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저명한 작가이자 작곡가로 유명한 ‘릭 루빈’의 색에 대한 말이다. 누군가 정해주는 기준이 자신의 한계를 구분짓는지 알 수 있다.
당신의 스타일은 지금까지 있었던 당신만의 경험이 정한다.
당신이 예전에 귀담아 듣지 않았으나 문득 떠오른 니혼슈의 이름
뭔가 당신에게 끌리는 니혼슈의 라벨이나 이름.
종업원의 설명을 듣고 마셔보고 싶게 되어버린 니혼슈
인터넷에서 ‘이게 맛있다’나 ‘그 돈으로 살 바에야 이게 낫다’ 라는 식의 코멘트를 보고.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의 추천으로 인해 당신의 취향의 방향이 정해지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당신의 취향이 뭔가 후지다고 느껴진다면, 당신의 취향이 당신의 색으로 되어있는 것이 아닌, 이름 모르는 다른 사람이나 대중의 취향이 반영되어 억지로 이끌려다니다보니 생겨버린 애매한 색깔의 취향이기에 후지다고 느껴지는 것일 것이다.
취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닌, 해당 분야에 대한 여러 경험, 그 분야가 아닌 것에서 겪었던 수 많은 경험들이 뒤섞여 자신만의 취향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취향을 발전시키고 자기만의 색을 입히는 데엔 시간이 들며 돈이 든다. 그렇기에 당신의 취향을 정하는 것은 당신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취향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
옷을 예로 든다면, 인터넷으로 옷을 주문하는 것은 미뤄두고 매장에 직접 가본다. 영화를 볼 때 스포일러를 당해 반전을 다 알고 본다면 영화의 매력이 없어지듯이, ‘이 브랜드는 이렇고 저 브랜드는 저렇다, 요즘 유행하는 것은 이런 재질에 이런 브랜드이다.’라는 스포일러를 당하면 옷에 대한 호기심은 사그러들고 가격과 가성비만을 찾아보게 된다. 물질적인 것만,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비교 가능한 것만 포커스가 맞춰지다보니 취향을 파악하는 폭이 좁아지게 된다. 그렇기에 일단 매장에 가서, 입어보고, 만져 본 뒤 ‘이거다’라는 게 있으면 사라. 가격은 우선순위에서 내려놓아라.
니혼슈도 마찬가지이다.
니혼슈 매장에 갔다면 자신의 마음에 드는 라벨 디자인, 가게에서 밀고 있는 사케, 종업원의 추천 등을 참고해서 자신의 판단을 기준으로 니혼슈를 골라보자.
니혼슈 바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라벨 디자인이 있다면 마셔보고 잘 모르겠다면 종업원에게 ‘오늘 개봉한 사케’, ‘얼마 안남은 사케’, ‘지금 주문한 음식과 어울리는 사케’ 등으로 조건을 걸어서 주문한다면 종업원은 더 추천하기 쉬울 것이다. ‘맛있는 사케 주세요’라고 한다면 종업원도 무엇을 내야 좋을 지 모를수가 있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고른 술이 자신의 취향이 아닐지라도 그렇게 취향이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니 슬퍼할 필요도 없다. 자신의 취향 목록에서 그런 스타일의 술은 제외시키면 그만인 문제이다.
똑같은 가게에 여러번 가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종업원과 좋은 관계가 형성된다면 종업원은 당신을 등처먹으려고 하기보단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니혼슈에 보다 많은 설명, 재밌는 설명을 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니혼슈를 마실 때에는 맛과 향만 즐기는 것도 충분히 좋은 컨텐츠가 되지만, 그 가게의 분위기나 음식과의 궁합, 종업원이나 옆에 앉은 사람과의 상호작용까지 더해진다면 맛과 향 위의 무언가를 당신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늘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은 니혼슈를 주문할 때 참고하면 좋은 생각 방식에 대해 얘기했다.
니혼슈뿐만 아니라 모든 술들, 음식까지도 맛과 향 너머의 것들이 존재한다.
맛과 향은 우리가 오감을 활용해서 직관적으로 와닿는 것들이므로 알기 쉽고 체험하기 쉽다.
그러나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그 너머의 무언가는 반드시 있으며, 그 무언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만의 체험을 통해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